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60)

유형준 의사 문인 열전

[의학신문·일간보사]

영국의 계관시인 중에서 의사는 지금까지 로버트 브리지스 단 한 명이다.

로버트 브리지스(Robert Seymour Bridges, 1844-1930)는 영국 켄트주 월머에서, 아버지가 부유한 켄트족 지주 가문의 일원이었던 대가족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일 년 후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의붓아버지가 교구장이었던 로치데일로 이사했다.

로버트 브리지스(출처. 퍼블릭 도메인)
로버트 브리지스(출처. 퍼블릭 도메인)

1854년부터 1863년까지 이튼(Eton) 칼리지에 다니며, 평생 친구로 지낼 시인 딕비 돌벤(Digby Dolben)과 라이오넬 머헤드(Lionel Muirhead)를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1863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코퍼스 크리스티(Corpus Christi) 칼리지에서 제라드 홉킨스(Gerard Hopkins)를 만났다. 브리지스는 홉킨스의 유고 시집을 발간하여 무명이었던 홉킨스와 그의 시가 빛을 보게 하였다. 홉킨스는 영국이 자랑하는 가톨릭 시인으로 우리나라에도 『홉킨스 시선』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옥스퍼드 대학에 재학 중이던 4년 동안, 세상은 생물의 기원에 관한 다윈주의적 논쟁의 큰 파문에 휩싸였고, 그 파문은 브리지스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도 얼마간 영향을 끼쳤다. 브리지스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고전학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중동으로 여행을 갔고, 이 여행에서 한때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가 되려 했던 생각을 바꾸어 미래의 직업으로 의학을 택했다. 준비 과정으로 독일에서 8개월을 보내며 당시 수많은 과학 논문에 쓰인 언어들을 배웠다. 스물다섯 살에 런던의 성 바돌로매(Bartholomew) 병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1873년 건강 검진에 불합격하여 일 년간 쉬면서 첫 시집 『시(Poems)』(1873년)를 출판했다. 이듬해 졸업하여 성 바돌로매 병원, 그레이트 노던 병원, 어린이 병원 등에서 근무하다가 1882년, 만 서른일곱 살에 폐렴에 걸려 은퇴했다. 그리곤 문학에 전념하여 여생을 가정의 테두리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은둔하다시피 시를 쓰고, 명상 및 작시법 연구에 몰두했다. 여러 편의 장시와 시극을 발표했지만, 주로 시집 『짧은 시들』(1890년, 1894년)에 실린 서정시로 이름이 알려졌다. 『새로운 시』(1925년)에는 강세보다는 음절수에 기초한 운율을 사용해 쓴 실험작들이 실려 있다. 자신의 85회 생일에 출판한 그의 가장 위대한 문학적 공헌인 철학적 장시 『아름다움의 유언(The Testament of Beauty)』에서도 이 형식을 구사했다.

1913년에 영어의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문학인과 언어학자들로 구성된 ‘순수 영어 학회’를 공동 창립했다. 아울러 오래된 찬송가를 현대 영어로 번역하는 모임의 대표로 헌신하였다. 1900년 왕립 의사 학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13년에 조지 5세에 의해 계관시인으로 임명되었다.

브리지스는 진지하고 성실한 문학적 기품으로 당대 시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작품 또한 동료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대중으로부터는 세상을 떠나기 십 년 전에야 비로소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곧 브리지스는 1920년대 내내 베스트셀러 시인의 자리를 누렸다.

브리지스의 시는 정직하고 순수하다. 순수한 정직을 숙달된 운율로 노래하고 있다.

“나 아름다운 모든 것 사랑하여, / 그것들 찾아 흠모하리; / 더한 신의 찬양 있으랴, / 빠른 세월 속의 사람도 / 아름다운 것들로 하여 영예로우리. // 나 또한 무언가를 만들며 / 만드는 가운데 즐기리! / 내일 비록 그것이 한낱 / 잠을 깬 뒤 기억에만 남는 / 꿈속의 빈말 같다 하여도.”
- 「아름다운 모든 것 사랑하여」 전문

영국 왕실 최고의 훈장인 메리트 공로 훈장을 받은 이듬해, 영국 보어스힐(Boar’s Hill)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딸 엘리자베스 다리쉬(Daryush)도 역시 영국의 유명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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